Review/책 리뷰

오직 두사람(김영하)

고고와 디디 2017. 12. 6. 10:14
반응형
이번 책은 책수다 전부터 뭐가 그리 맘에 안드는지 많이도 궁시렁 댔네요. 이야기 구성력과 촘촘한 구조에 늘 열광하던 저이기에 김영하의 이번 책은 그런 기쁨을 저에게 주지 못해서 일까요? J가 말하듯 허무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그닥 그 허무주의가 잘 와닿지 않은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어요. 전작 <살인자의 기억법>의 촘촘한 구조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한 저로서는 이번 작품은 조금 실망한 감도 없지 않았어요. 그 책에서는 치매에 걸린 살인자의 고백록이라는 절묘한 설정으로 이야기가 풍부해졌거든요.

#신의 장난
4명의 남녀를 한방에 가둔다는 설정과 그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다루는 것은 다른 영화나, 책애서도 흔히들 보는 거라 식상한 면도 없지 않지만 더욱 실망했던 것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하기 위해 이야기 구조를 세우려는 의지조차 없다는 데 있습니다. 

비슷한 구조이지만 나름 반전도 있고 메시지도 묵직한 KBS 무대 당선작 중 하나와 비교를 안할 수가 없네요. 그 작품은 어둠 속에서 세 남녀가 전날의 기억을 잃은 채 여기, 지금 왜 여기에 있는지를 궁시렁 대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납치된 거로 알고 온갖 억측을 내놓는 것으로 시작해 불이 켜지고 저승사자가 나타나 사실 너네는 어제 죽었다. 각기 다른 이유로. 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지죠. 

더욱이 이 세 남녀가 서로 남남이 아니라 어제 사건에 가해자나 피해자로 엮어 있는 관계라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전되면서 정말 재밌다..라는 생각이 절로 나게 하는 잘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신의 장난>은 신입사원 훈련의 일환으로 방탈출을 핑계삼아 방에 갇혀 있는 것으로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 다르지만 이걸 차치하고서도 이야기의 서사가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대되는 지점이 없었던 것 같아요. 

#오직 두사람
아버지와 딸의 친밀하고도 집착적인 관계가 건강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죠. D가 말하듯, 여성팬들이 많다는 것을 염두한 채 이러한 글을 작품 전반에 배치에 놓은 것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한번쯤 겪어봤을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대해 리얼하게 잘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죠. H는 이걸 사랑에서 남녀의 관계로도 읽혀질 수 있다고 해석을 해주기도 했죠. 

순간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에서 거리 두기에 성공했지만 남녀관계에서는 아직도 집착과의 연결고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연애를 하면서 분명 깨달은 건데 자신의 일이 먼저고 자신의 자아가 먼저인 약간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항상 기대거나 집착하거나 갈구하게 되는 내 자신을 보면 연애라는 게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아이를 찾습니다
마트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채 10년이 훌쩍 지나서야 아이를 찾게 되었지만 아이가 유괴범인 그 여자를 엄마로서 사랑한 것을 보며 아이러니를 자아낸 이 작품을 보면서 늘 다루던 이야기 패턴에서 벗어나 이면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김영하 전작들에서 늘 감탄을 하던 부분이 이거였죠. 같은 주제더라도 포커스가 이상한 곳에 꽂히게 하는 재주가 있다는 사실. 저는 유괴범을 엄마라고 알고 살던 아이의 마음에 눈길이 갔습니다. 상황적으로는 질타를 받아야 할 유괴범인데 어떻게 그 아이를 사랑으로 키워냈는가. 왜 아이를 유괴해갔는가에 관심이 쏠리게 되었죠. 주인공은 유괴를 당한 아이의 부모님인데 참 묘하게 포커스가 유괴범과 아이의 관계에 맞춰지더라고요. 이때 이 작가 묘하다. 그로테스크하게 만들고 소름끼치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 독특한 작가구나 느꼈습니다.

*인생의 원점
보는 내내 깔깔거리던 작품입니다. 역시 서사는 감탄할 만한 것은 없지만 대사 자체가 깨알 같아서요. 사랑하던 옛 애인이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다 결국 목숨을 끊게 되는 막장 같은 이야기를 말하고 있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 옛 애인이 느끼는 찌질한 면을 대사를 통해 과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애인이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애인이 있었다는 설정, 그 남자가 남편을 때려 눕혀 남편이 누워있고 그곳에 병문안 가는 척하면서 그게 꼬시다고 서슴없이 말한다던지~~

여자나 패는 개새끼, 넌 곧 죽을 거다. 똥오줌도 못 가리고 이렇게 평생 누워 있거나.. 그런데 봐라,, 난 이렇게 살아남았고 그게 너무 좋다 좋아죽겠단 말이다. (인생의 원점, P.109)


옛애인이 죽었는데 제 2의 애인과 노닥거리는 보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장면에서 이작가 참 찌질한 걸 감춰주지 않고 까발려주는 구나..라는 인상을 가졌습니다. 

인아의 죽음을 두고 이런 상상이나 하고 있는 자신이 혐오스러웠지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인아는 죽었고, 남편은 곧 죽거나 그에 버금가는 상태가 될 것이고 사채업자는 교도소에 가게 될 것인데 자신만 아무 일 없이 무사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게 문득 기가 막히게 좋았다.  (중략) 인생의 원점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 그런 정신적 사치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 그게 진짜 중요한 거야. (인생의 원점, P.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