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책 리뷰

천명관 소설 <고래> 허무를 그려내는 방식

고고와 디디 2018. 7. 8.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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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읽고 있는 동안 잠깐 책을 읽는 것을 멈추게 한 대목이 있었는데 금복의 딸 춘희가 코끼리 점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말이 대화이지 사실 춘희가 코끼리 바라보며 혼자 생각하는 부분이지요. 전 이 대목이 이 소설이 끌고 가는

 

방향이나 색깔에서 다소 튄다고 생각했습니다. 금복이란 여성의 인생의 일대기를 굵게 그려내며 그녀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벌이는 사건을 그려내며 숨가쁘게 독자를 몰고 가는 게 주로 쓰는 작법인 듯 하여 이 부분은 지나치게 서정적이며 어설프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론할 때 가장 먼저 이 대목을 언급할 수 있었던 것은 순간 첫사랑에게 처음으로 준 선물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20살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무슨 선물을 줄까 하다 동화 한편 즉석에서 써서 그의 블로그에다 올려 놓았습니다. 당시 그의 블로그에서 글을 수없이 주고 받고 있었기 때문이죠. 지금 봐도 참 어설프지만 그래도 그 외로움과 나 좀 봐달라는 외침이 느껴져 아직까지도 아껴서 보는 글 중에 하나입니다. 고래 속 춘희가 엄마로부터 사랑을 구걸하지만 외면당하는 일을 수차례 당하면서 그 먹먹함을 코끼리 점보와의 대화(?) 속에서 풀어 넣는 것이 당시 내 마음 좀 봐달라는 동화 속 나의 모습과 겹쳐보이더라고요.


역시나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저는 이번 소설에서는 여기 저기 설화를 가져와 이야기를 전개시키거나 동화 속 이야기(피리를 부는 사나이) 등 소재만 (벌로 바꿈) 바꿔서 이야기를 끌어나가기에 필사할 만한 구문이나 작법이 없었다고 말씀 드린 바 있지만 '허무'를 이 이야기 전체에 깔아 놓은 것 같아 읽는 내내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힘을 겨룰 상대가 없는 장골로 이름났던 걱정이 순식간에 미련한 밥벌레로 전락해버리는 설정이라든지 한 때 잘나가던 극장이 한 순간에 타버려 재가 되어버린다는 설정을 보며 다시금 제 인생관(지금 이순간의 인생관이겠지만)을 되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 인생 어떻게 될 지 모르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지금 내 앞에 앉은 사람. 바로 앞에 있는 과업에 열정을 불태우고 후회없이 하루하루 살자. 라는 생각을 떠올립니다.



p.s 이젠 추억이 되어버린 동화 <알> 첨부해요^^


...


'껍데기를 두껍게 해야 돼..더 두껍게,,,

어떻게 해야지..?'

 

-구르지도 않고

 손을 내밀지도 않고

 가만히 있으면 돼

 요동도 치면 안될꺼야

 

'행여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쳐

깨지면 어떡해?'

 

-그럼 그 자세에서 머리와 발을 부착시켜

 

'내 모습이 이상하지 않을까?'

 

 -얼굴을 깊게 숙이면 되잖아

아무도 너를 몰라보게

 

 '아 그러면 되겠다'

 

 나는 그대로 웅크려 있었지요

 '누가 나에게 말한거지 근데..? '

 

 어느새 밤이 되서

 너른 땅위에 빛나는 존재는 나하고 별밖에 없었어요

 

너른 땅위에 나 혼자 있었던 것 같아요

살며시 머리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거든요..

 

~~

아무도 없나부다..

 

살며시 고개를 들었답니다

휘휘~~고개를 돌리면서

 

근데 이상한 일이지요?

행여나 지나가는 사람이 아는체를 하고 툭툭 건드릴까

그렇게 깊게 머리를 처박아 놓았는데

왜 이리 맘이 허하지..

아리기까지 해

 

어쩌지....

 

어느새 나의 몸은 미끌미끌해지고 있었어요

,,,,

내가 왜 이러지?

 

-너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잖아

눈물이 아래로 흐르지 않고 계속 고여 있으니

마를 새가 있나

 

'아니야 난 절대 울리가 없어

난 운적이 없어.한번도......

 

근데 이상하다...

비를 맞을때는 시원하기만 했는데

 

'왜 지금은 휘청거리지?'

 

-내가 뭐랬어..

울음을 그치라니깐.....

마르려고 하면 또 울고....계속 너의 몸에 웅덩이를 만들고 있잖아...

그러다간 너의 껍질이 다 벗겨지겠다

 

'넌 누구지? 왜 얼굴이 보이지 않는거야?

 

-너 두꺼운 껍질을 갖고 싶다고 했잖아

난 그저 그것을 도와주고 싶을 뿐이야

 

'나는 왜 울고 있는거지?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은 아무도 나를 건들지 않았어

근데 왜 몸이 후들후들 떨리지?'

 

-너 혹시 사람들에게 너를 인식시키고 싶은 거 아냐?

 

'아냐..난 혼자가 편해..

생각하고 있는데 너처럼 귀찮게 하는 녀석도

없으면 더 금상첨화겠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근데 왜 넌 비를 맞은 것처럼 몸을 떨며 울고 있지?

 

나는 그 불청객에게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근데 말이야. 사람들은 나를 건드려보기만 하고 나를 깨볼 생각은 왜 안하는 걸까?'

 

-너는 왜 혼자가 되길 바란 거지?

 

'사람들은 날 귀찮아하는 것 같아

그러니깐 깨보지도 않고 건들고 가기만 하지'

그런데 왜 내가 그런 사람들을 위해 나의 껍질을 벗겨 내면서까지

나를 보여주어야 해?'

 

-넌 한번도 너 자신을 보여준 준적이 없잖아

 왜 지레 겁을 먹는거지?

 왜 혼자 상상을 하는거지?

 그리고 왜 그렇게

 또 웅크리고 있어?


'그럼...내가 껍질을 깨트리면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줄까?'

 

 

-그건 네가 더 잘 알텐데...........

 

......

난 곰곰히 생각을 했답니다

근데


,,,,

미끄러워서 그만 넘어지고 말았어요

 

근데 이건 정말 비밀인데요..

 

그 참견쟁이한테 들킬까봐

본의 아니게 넘어진 척 한거에요.....

ㅋㅋ


....


너무 심하게 넘어졌나? 

내 마음이 여기저기 방향을 못 찾고 흘러가네요

 

 

 

아 따뜻해

그래요,,

해가 떴답니다....

 

나 어디 있게요?

찾아 보세요

 


아침에 사람들이 몰려와서 나에게 인사 했어요

간혹 가다 나보고 눈부시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답니다


ㅎㅎ 뭐 정말 듬직한 후라이라고?

그래요....

나는 금세 후라이가 되어버렸답니다


지금은 조각조각 분해 되어서

사람들 입을 통해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지만.....


하지만 난 몸이 아니라 그들의 맘에 들어갔다고 생각할래요


따뜻해요?

난 당신 맘에도 들어 있어요

잘 찾아보세요....

 

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참견쟁의 말이 맞았던 거 같아요

 

난 외롭다는 거

혼자라는 거에 자부심을 가지려고

정말 그러려고 무지 노력했지만요

 

.....

 

난 혼자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걸 좋아했답니다.

 

애써 부정하려 했지만...

그것도 눈을 부릅뜨고 말입니다

 

여러분도,,,,

 

괜히 혼자가 편하다고 고집부리지 말고

 

사람들한테 가서 툭툭 등을 두들겨보세요...

 

아니면 모르고 친 척 살짝 건드려 봐도 좋아요

 

그 사람도 분명히 좋아할 거랍니다

 

분명 그 사람도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깐요.. (2003.1.20..930분 탈고)

 

덧붙여 야유회 사진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