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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책 리뷰

숨은 1cm라도 찾자 <위험한 비너스> 토론 후기

by 고고와 디디 2017.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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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비너스>를 읽고 나서 처음 느낀 단상은 이 작가 참 노련하구나~라는 거였습니다. 드라마로 치면 장편 드라마를 써내려가는 데 지루할 틈을 주지 않도록  적당한 간격 안에 궁금할 만한 포인트를 찍어 떡밥을 던져놓는 솜씨는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하쿠로와 처제(?) 가에다와의 위태로운 썸타기(결국 가에다는  형사였죠.)부터 하쿠로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비밀 뒤에 숨겨진 의외의 범인, 하쿠로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의학가 명문가들의 이기적인 행태까지 계속해서 페이지를 들쳐볼 수 밖에 없도록 하는 힘은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책이 마무리될 쯤 놀랍게도 작가는 거창하게 뿌려둔 떡밥들을 한순간에 허망하게 만듭니다. '관서의 망'이라는 그림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작법으로 '과학적 사실'을 '문제 해결'의 핵심 코드로 사용하지도 못했습니다. 리만 가설이라든지, 인체 실험이라든지 이런 과학적 요소들이 이야기 위에 올라타지 못하면서 흐지부지 되는 격이 되어버린 거죠. 


토론의 분위기도 저의 실망감하고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멤버들은 <위험한 비너스>의 플롯의 빈약함에다 진부하고 통속적인 드라마의 허점을 정확히 짚어냈습니다. 하지만 묘하지요. 가차없이 비판하고 까대는 와중에 멤버들의 모습을 구경하면서 묘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원구 오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비너스> 속의 숨은 1cm의 장점을 찾아내는 것을 보며 이 오빠가 어떻게 사람들을 혹은 사물들을 대하는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놀라운 사람입니다. 봐도 봐도 새로운 모습이 나와요. 처음에는 그런 면들 때문에 성격이 읽혀지지 않아 친해지기 힘들겠다~싶은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구경하는 재미에 토론 가는 발걸음이 더 가벼워진 듯 합니다.


원구 오빠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던진 질문을 읽어내 꺼내 놓으면서 토론장 분위기는 들뜨기 시작합니다.


질문 :  

"만약 죽은 하쿠로의 아버지가 얻은 서번트 증후군 같은 재능을 너에게 준다면 어떤 천재성을 원하냐?"


저는 단연코 사람의 마음을 읽어 연애 달인자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원구 오빠가  '파는 것이 인간이다.'라는 책을  추천해주셨드랬죠. "연애를 할 때 실패 요인을 내부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찾는 것이 중요하다~." 라는 명언까지 덧붙이시면요.


원구 오빠는 영화 감독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릴적 알록달록하고도 선명한 한 편의 SF와 같은 주인공이 되는 꿈을 많이 꿨다고 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이 연출로 쫘악 화면에 펼쳐지는 순간을 좋아한다고 말했죠.


소피아는 마음을 읽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공허함'이라는 놀라운 키워드를 끄집어냈습니다. 평소 공허함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은 저로서는 각자 언제 공허함을 느끼는지 공허함을 극복하는 방법은 뭐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마구마구 하게 됩니다.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중에 사람들은 사회적 이슈에 집착하거나 종교에 의지해 공허함을 버텨나간다는 이론적 측면에서부터 십년도 넘게 지난 일기장을 요즘 다시 보면 그때 생각한 일 중에 80퍼센트는 생각대로 안되었다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며 자신이 공허함을 떨치는 방법으로  더이상 하고 싶은 게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가능성 있는 찾아다니며 행동으로 옮기다 보면 뭔가 있을 거다~라는 원구 오빠의 조언까지 참 따뜻하면서도 솔직한 말에 마음이 충만한 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거 뭐 기승전 원구오빠 이야기라 좀 찔리기 하지만 원구오빠는 현선 언니 말처럼 정보를 극적으로 풀어내 사람들이 주목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니 어쩝니까?


P.S 오늘 <위험한 비너스>에 대해 할 말이 별로 없을 까봐  잠깐 '정보 공유 시간'을 가졌는데 영숙이가 추천한 소설이 참 끌리더라고요. 소설 <가스등>을 떠올리게 하는 <걸온더트레인>이라는 베스트 셀러인데 한 여자를 미쳤다고 믿게 만드는 잔인한 사회 체제에 대한 이야기라는 짤막한 소개에 전 그만 홀릭하고 맙니다. 이상하게도 나는 누구 한명을 바보 만드는 이러한 이야기를 보면 과거 회사 생활하면서 겪은 얼토 당토 않은 무수한 에피소드가 생각나 궁금해지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