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를 읽고 있는 동안 잠깐 책을 읽는 것을 멈추게 한 대목이 있었는데 금복의 딸 춘희가 코끼리 점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말이 대화이지 사실 춘희가 코끼리 바라보며 혼자 생각하는 부분이지요. 전 이 대목이 이 소설이 끌고 가는
방향이나 색깔에서 다소 튄다고 생각했습니다. 금복이란 여성의 인생의 일대기를 굵게 그려내며 그녀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벌이는 사건을 그려내며 숨가쁘게 독자를 몰고 가는 게 주로 쓰는 작법인 듯 하여 이 부분은 지나치게 서정적이며 어설프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론할 때 가장 먼저 이 대목을 언급할 수 있었던 것은 순간 첫사랑에게 처음으로 준 선물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20살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무슨 선물을 줄까 하다 동화 한편 즉석에서 써서 그의 블로그에다 올려 놓았습니다. 당시 그의 블로그에서 글을 수없이 주고 받고 있었기 때문이죠. 지금 봐도 참 어설프지만 그래도 그 외로움과 나 좀 봐달라는 외침이 느껴져 아직까지도 아껴서 보는 글 중에 하나입니다. 고래 속 춘희가 엄마로부터 사랑을 구걸하지만 외면당하는 일을 수차례 당하면서 그 먹먹함을 코끼리 점보와의 대화(?) 속에서 풀어 넣는 것이 당시 내 마음 좀 봐달라는 동화 속 나의 모습과 겹쳐보이더라고요.
역시나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저는 이번 소설에서는 여기 저기 설화를 가져와 이야기를 전개시키거나 동화 속 이야기(피리를 부는 사나이) 등 소재만 (벌로 바꿈) 바꿔서 이야기를 끌어나가기에 필사할 만한 구문이나 작법이 없었다고 말씀 드린 바 있지만 '허무'를 이 이야기 전체에 깔아 놓은 것 같아 읽는 내내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힘을 겨룰 상대가 없는 장골로 이름났던 걱정이 순식간에 미련한 밥벌레로 전락해버리는 설정이라든지 한 때 잘나가던 극장이 한 순간에 타버려 재가 되어버린다는 설정을 보며 다시금 제 인생관(지금 이순간의 인생관이겠지만)을 되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 인생 어떻게 될 지 모르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지금 내 앞에 앉은 사람. 바로 앞에 있는 과업에 열정을 불태우고 후회없이 하루하루 살자. 라는 생각을 떠올립니다.
p.s 이젠 추억이 되어버린 동화 <알> 첨부해요^^
알...
'껍데기를 두껍게 해야 돼..더 두껍게,,,
어떻게 해야지..?'
-구르지도 않고
손을 내밀지도 않고
가만히 있으면 돼
요동도 치면 안될꺼야
'행여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쳐
깨지면 어떡해?'
-그럼 그 자세에서 머리와 발을 부착시켜
'내 모습이 이상하지 않을까?'
-얼굴을 깊게 숙이면 되잖아
아무도 너를 몰라보게
'아 그러면 되겠다'
나는 그대로 웅크려 있었지요
'누가 나에게 말한거지 근데..? '
어느새 밤이 되서
너른 땅위에 빛나는 존재는 나하고 별밖에 없었어요
너른 땅위에 나 혼자 있었던 것 같아요
살며시 머리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거든요..
휴~~
아무도 없나부다..
살며시 고개를 들었답니다
휘휘~~고개를 돌리면서
근데 이상한 일이지요?
행여나 지나가는 사람이 아는체를 하고 툭툭 건드릴까
그렇게 깊게 머리를 처박아 놓았는데
왜 이리 맘이 허하지..
아리기까지 해
어쩌지....
어느새 나의 몸은 미끌미끌해지고 있었어요
어,,어,,
내가 왜 이러지?
-너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잖아
눈물이 아래로 흐르지 않고 계속 고여 있으니
마를 새가 있나
'아니야 난 절대 울리가 없어
난 운적이 없어.한번도......
근데 이상하다...
비를 맞을때는 시원하기만 했는데
'왜 지금은 휘청거리지?'
-내가 뭐랬어..
울음을 그치라니깐.....
마르려고 하면 또 울고....계속 너의 몸에 웅덩이를 만들고 있잖아...
그러다간 너의 껍질이 다 벗겨지겠다
'넌 누구지? 왜 얼굴이 보이지 않는거야?
-너 두꺼운 껍질을 갖고 싶다고 했잖아
난 그저 그것을 도와주고 싶을 뿐이야
'나는 왜 울고 있는거지?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은 아무도 나를 건들지 않았어
근데 왜 몸이 후들후들 떨리지?'
-너 혹시 사람들에게 너를 인식시키고 싶은 거 아냐?
'아냐..난 혼자가 편해..
생각하고 있는데 너처럼 귀찮게 하는 녀석도
없으면 더 금상첨화겠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근데 왜 넌 비를 맞은 것처럼 몸을 떨며 울고 있지?
나는 그 불청객에게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근데 말이야. 사람들은 나를 건드려보기만 하고 나를 깨볼 생각은 왜 안하는 걸까?'
-너는 왜 혼자가 되길 바란 거지?
'사람들은 날 귀찮아하는 것 같아
그러니깐 깨보지도 않고 건들고 가기만 하지'
그런데 왜 내가 그런 사람들을 위해 나의 껍질을 벗겨 내면서까지
나를 보여주어야 해?'
-넌 한번도 너 자신을 보여준 준적이 없잖아
왜 지레 겁을 먹는거지?
왜 혼자 상상을 하는거지?
그리고 왜 그렇게
또 웅크리고 있어?
'그럼...내가 껍질을 깨트리면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줄까?'
-그건 네가 더 잘 알텐데...........
음......
난 곰곰히 생각을 했답니다
근데
어,,어,,
미끄러워서 그만 넘어지고 말았어요
근데 이건 정말 비밀인데요..
그 참견쟁이한테 들킬까봐
본의 아니게 넘어진 척 한거에요.....
ㅋㅋ
음....
너무 심하게 넘어졌나?
내 마음이 여기저기 방향을 못 찾고 흘러가네요
아 따뜻해
그래요,,
해가 떴답니다....
나 어디 있게요?
찾아 보세요
아침에 사람들이 몰려와서 나에게 인사 했어요
간혹 가다 나보고 눈부시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답니다
ㅎㅎ 뭐 정말 듬직한 후라이라고?
그래요....
나는 금세 후라이가 되어버렸답니다
지금은 조각조각 분해 되어서
사람들 입을 통해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지만.....
하지만 난 몸이 아니라 그들의 맘에 들어갔다고 생각할래요
따뜻해요?
난 당신 맘에도 들어 있어요
잘 찾아보세요....
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참견쟁의 말이 맞았던 거 같아요
난 외롭다는 거
혼자라는 거에 자부심을 가지려고
정말 그러려고 무지 노력했지만요
음.....
난 혼자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걸 좋아했답니다.
애써 부정하려 했지만...
그것도 눈을 부릅뜨고 말입니다
여러분도,,,,
괜히 혼자가 편하다고 고집부리지 말고
사람들한테 가서 툭툭 등을 두들겨보세요...
아니면 모르고 친 척 살짝 건드려 봐도 좋아요
그 사람도 분명히 좋아할 거랍니다
분명 그 사람도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깐요.. (2003.1.20..밤 9시 30분 탈고)
덧붙여 야유회 사진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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