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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책 리뷰

[책리뷰] 김려령의 기술자들, 고도를 기다리며가 생각나는 이유는?

by 고고와 디디 2024.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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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는 곧 자기 신세가 될 것 같은 조에게 약간의 호의를 베푼 거였다.

더 잃거나 얻을 것이 없는 가게 수준만큼의 인심이었다. 19p


<기술자들>에서 이 문장을 접하는 순간 이건 정독해서 읽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무일푼으로 뭔가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 않는다는 건 안다. 그렇지만 절망적이지 않고 로드 여행을 하는 것처럼 이야기 분위기가 그려지는 것은 우연히  최의 인생에 끼어든 조 덕분이 아닐까.

잠깐의 배려를 했을 뿐인데 그와의 로드 생활은 한편의 기억되고 싶은 장면이 되어버렸다. 조는 그와는 반대의 성격으로 자신을 보완해줄 뿐 아니라 일처리도 빨랐다. 문득 그의 과거가 궁금하지만 물어보지 않는다. 그렇게 이야기는 흘러간다.

각박하고 빠른 이 세대의 속도와는 다른 느린 템포에 눈앞의 이익을 쫓기며 살아가는 사람들만 보다가 이 인물들을 보면 고도를 기다리며의 고고와 디디가 생각난다.(여담이지만 내 필명도 여기서 따왔다. 때로는 고고이기도 디디이기도 한 이름)

소설을 지어내는 일도 이와 같지 않을까? 엉성한 줄기가 짜놓고 내가 만들어놓은 인물들을 따라가며 그들의 대화와 마음을 적어내리는 거, 가끔은 그들이 너무 빨리 장면이 그려져서 손이 따라가지 못할 때도 있었다.

생경한 경험이었지. 재미있었다. 인물들이 마음이 내 마음을 쳐 가슴이 저릴 때도 있다는 건 정말이지 특별한 경험이다. 그래서 소설을 쓸 때 머릿속에 장면이 촥 그려지고 인물들의 감정을 받아들이게 되면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한번 글을 써봐라..영업하게 되는 거. 나에게 따스한 면모가 있다면 내가 좋은 걸 남에게도 적극 추천하는 습관 같은 거 아닐까.

조와 최의 로드 여행을 생각했을 뿐인데 그들이 성격이 달라 서로를 보완해주고 서로에게 반하는 전개에 나는 감동을 넘어 전율을 느꼈다. 여행 중에 만나게 된 따뜻한 사람들과의 마음 교류의 이런 모습을 먼저 보고 적어버린 작가의 심정은 어땠을까? 위로받았을까? 아님 허탈한 마음뿐이었을까.

곧 자신과 같은 방랑의 길을 떠날 것 같아 우연히 만난 조에게 조금 배려했을 뿐인데 지금은 외려 그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 그의 가치를 알아봐주고 적재적소에 일을 연결해주는조의 모습에 그들은 참 잘 만났네. 싶다.

내 인생도 돌아보면 나도 나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부족한 것 외의 장점을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을 만나왔다. 나 역시 그런 존재가 되기를 바라기도 하고. 나는 이것이 맥북을 사거나 아이패드를 사는 순간보다도 더 행복했던 것 같다. 나의 타고난 성정은 이런 것이다. 사람들에게 베풀고 그들이 주는 거 최선을 다해 감사해하면서 사랑하는 것.

나에게 이런 성정이 있다는 것을 30대가 넘어서야 깨달았다. 너무 늦은 건 아닌가 싶지만 지금이라도 아는 게 어딘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난 우울할 때 이런 나의 성정을 충족시킬 일들을 하곤 한다. 그럼 조금은 행복해지니까. 가령 친구들의 고민들을 들어주거나,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수업을 준비해 그들을 즐겁게 해주거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한 격려의 말들을 담은 영상을 편집해 유투브에 올린다거나 그런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