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열두번째 용의자> 포스터ⓒ 인디스토리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는 시대적 비극을 무겁지 않게 전달하기 위해 미스터리, 추리 장르를 결합했다.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한국전쟁까지 그 안에서 희생된 독립 운동가들과 독립 후에 친일파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한다.
영화 초반에는 1953년, 시인 백두환의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찾아내기 위해 '오리엔타르 다방'에 잠입해 수사하는 사건 수사관 김기채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후 드러나는 진실은 그 이상의 것을 말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몇 가지 장치 덕분이다.
우선, 이야기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장르를 달리해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전반부에는 추리 장르가 부각된다. 시인 백두환을 죽인 용의자 선상에 오른 '오리엔타르 다방' 속 예술가들은 저마다 항변하고, 이를 통해 하나둘씩 시인 백두환의 실체가 밝혀진다. 이는 일제의 잔재와 한국전쟁의 전운이 남아 있던 시대의 이야기를 드러낸다.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 속 장면ⓒ 인디스토리
후반부에서는 시대에 따라 자신의 양심을 저버리고 시류를 타는 남자 김기채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된다. 추리에서 사실주의로 장르가 바뀐 듯한 분위기가 된다.
김기채는 일제에 아부하고자 수많은 동포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다. 그리고 일제감정기와 남북전쟁을 지나며 이제는 친일청산을 도맡아 하는 등 시류에 편승하는 인물이다. 과거에는 어찌되었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며 가능하면 과거를 은폐하고 죄를 뒤집어 씌울 희생자를 찾고자 '오리엔타르 다방'에 들린 김기채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열두번째 용의자> 속 장면ⓒ 인디스토리
김기채와는 대척점에 있는 인물인 유정의 분투가 눈에 띈다. 유정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게 잘 보이고자 어린 학생들을 전쟁터에 동원하던 백두환이 해방 이후에도 버젓이 돌아다니는 모습에 분노한다. 희생된 학생 중에 자신의 오빠가 있었기에 이러한 백두환의 모습이 뻔뻔스러워 그가 죄값을 치르도록 그를 죽이려는 계획을 짠다. 그는 가슴 속에 오빠를 묻으라는 말에 지난 일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할 뿐이라고 잘못된 것은 청산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다.
시인 백두환이 해방 이후 자신의 죄를 스스로 고백하기 위해 썼던 원고를 불사르기 위해 김기채는 백두환과 유정을 사살한다. 이 죄를 숨기기 위해 백두환과 유정의 주변 인물들을 찾아 '오리엔타르 다방'에 잠입하고 결국 그들을 친일을 저지르는 죄인으로 김기채 자신은 친일파들을 사상하는 등 처단하는 성과를 올린 수사관으로 포장한다.
영화는 '오리엔타르 다방'을 운영하던 노석현의 입을 빌어 일제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무관심한 채 현재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노석현은 정의는 사라진 채 애국심만 밝히는 행위는 역사는 쳐다보지도 않고 애국을 논하는 격이라고 김기태를 성토한다. 그리고 유정이 백두환이 죄값을 치루도록 일을 도모하고자 계획을 짜는 중에 관심을 보이질 않는 박인성에게는 무지함을 핑계로 정의를 보지 않는다면 죄값을 아직 치루지 않은 기득권층들은 우릴 여전히 개돼지로 볼 거라고 경고한다.
김기태가 두 번이나 자신의 죄를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은 과거의 죄를 청산하지 않는다면 이같은 비극은 되풀이 될 것이라는 섬뜩한 진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일침을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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