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방송, 유투브 리뷰

영화 <튤리>가 그린 이 시대의 엄마

by 고고와 디디 2019. 11. 11.
반응형

*주의! 이 글에는 영화 <툴리>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독박육아를 하는 아내, 계획밖의 셋째 임신, 독특한 아이를 둔 엄마, 이 모든 것이 마를로(샤를리즈 테론)를 묘사한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이상의 문제를 떠안을 때가 있다. 2018년에 개봉된 영화 <툴리>는 이 세상에서 가정을 지켜내기 위해 안팎으로 하루하루 전쟁터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엄마, 아내에게 주는 위로다.
 
   

                                                                               ▲영화 <툴리> 포스터ⓒ 리틀빅픽처스

   
드루는 바쁜 직장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아이들을 챙기고 남은 시간에 게임을 즐기는 평범한 남편이다. 평범함이라는 것도 이 시대에 남편에게 통용되는 기본이라는 것이지 그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영화 <툴리>에서는 남편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것들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에둘러 설득하기 위해 정교하게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성공한다.
 
마를로의 오빠는 곧 있으면 태어날 셋째 아이와의 삶을 대비해 그녀에게 야간 보모를 추천한다. 매일 밤, 퇴근 후 침대에서 게임만 하는 남편으로서는 보지 못한 문제를 그녀의 오빠는 예상해 제안한 것이다.
 
마를로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둘째 아들 조나 때문에 힘들다. 아이가 무사히 유치원을 졸업하지 못하고 퇴원당할 위기에 처한 것도 속상하다. 이런 상황에서 마를로는 야간 보모를 고용하기로 한다. 그렇게 만나게 된 툴리는 셋째 딸을 수준급으로 보살피고 덕분에 마를로는 항상 아이가 울면 깨어나서 아이를 돌보는 일을 도맡았는데 덕분에 밤을 새지 않아도 되었다.

 

                                                                                            ▲영화 <툴리> 속 장면ⓒ 리틀빅픽처스

 

어느날, 툴리(맥켄지 데이비스)는 룸메이트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말하며 지금 시내로 나가 바람 쐬러 가자고 그녀에게 제안하는 데 하루 노는 데도 마를로는 어린 미아 때문에 망설인다. 이에 툴리는 아빠도 있으니 하루 저녁쯤 미아를 돌볼 수 있다고 설득한다. 하루 잠깐 바람 쐬러 나가는 것도 생각하기 힘든 마를로의 모습에서 퇴근 후 침대에서 게임을 하던 드루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그리고 그동안 드루가 집안에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다는 점이 느껴진다.
 
37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마를로는 예전만도 못한 몸매에 누가 챙겨주는 것에도 익숙하지 못할 정도로 '새벽 쓰레기차'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자세히 보면 컨실러 범벅인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이에 툴리는 그런 그녀에게 가정을 만들고 가족들을 위해 일을 해주는 지금, 꿈을 이룬 셈이라고 말해준다. 서로의 20대, 30대가 좋은 것이라고 실랑이를 하는 그들을 보면 그들 모두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결말 부분에서는 마를로가 선택한 방식을 보여주면서 여지껏 그녀의 삶이 얼마나 버거웠는지를 에둘러 말한다. 그녀가 처녀때 쓴 이름이 툴리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녀가 만난 툴리는 그녀가 만들어낸 허상임이 밝혀진다. 수면 부족에 과로까지 더해진 삶에서 벗어나고자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녀가 툴리랑 바람 쐬러 나간 것도 사실 홀로 바람 쐬러가면서 술을 마시고 음주운전을 한 것이다. 비극은 다행히 피해갔지만 이를 통해 남편 드루는 그녀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가족을 위해 희생했는지 깨닫는다. 그리고 이후 아내와 요리를 준비하고 셋째 딸의 육아를 함께 나누며 그녀의 마음과 몸을 가볍게 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 변화는 아이가 태어 난 후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다시 써야만 하는 순간을 보여주려고 했던 제이슨 라이트맨 감독과 디아블로 코디 작가의 의도가 십분 발휘된 부분이다.
 
 

                                                                                               ▲영화 <툴리> 속 장면ⓒ 리틀빅픽처스

 

일찌감치 마를로가 이 일을 모두 감당해내기에는 자신이 없다고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면 마를로의 짐이 좀 가벼워졌을까? 마를로는 홀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집안일을 하는 등 두루 해내는 슈퍼우먼과 같은 역할을 이 시대 엄마들에게 요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군말없이 몸과 마음이 망가질 때까지 끝없이 나오는 일들을 하나둘씩 해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살아가는 무수한 워킹맘의 집안 사정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영화 <툴리>는 아무말없이 묵묵하게 일을 이겨내는 엄마 마를로의 삶을 조명하면서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보여준다. 이를 통해 어떤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정에 해답이 될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