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정글과 같다. 동료를 배려하는 마음을 들키는 순간 잡아먹히기 쉬운 먹잇감이 되기 쉽다. tvN 드라마 <싸이코패스 다이어리>에서 육동식(윤시윤)이 딱 그렇다.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고도, 누군가 윽박지르고 또 누군가가 동정에 호소하면 아무말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사고 후 기억상실 때문에 몰랐던 사실 즉, 자신이 싸이코패스였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어떨까? tvN 드라마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는 바로 이런 의문에서 시작된 이야기일 테다.
착해빠진 말단 사원 육동식은 우연히 살인사건 현장을 목격하고 도망치는 가운데 사고 때문에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더욱이 육동식이 범행일지가 담긴 빨간 수첩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면서 삶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되는 상황이 연출된다.
슈퍼 히어로가 슈퍼 파워를 가진 뒤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듯, 육동식은 남을 배려하고 싫은 소리를 못 꺼내던 말단 사원에서 할 말을 다 하는 사원으로 변한다. 이 부분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스스로 싸이코패스라고 착각했을 뿐인데 육동식에게는 한번 세상에 대고 할말 다하며 사는 사람이 될 수 있는 판이 마련된 셈이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에 독박을 쓰는 등 철저하게 당하고만 살던 육동식은 다시 한 번 상사가 기억을 잃은 허점을 노려 사원들의 거짓진술서를 작성해 그에게 책임을 돌릴 때 이번에는 상사의 졸렬함을 읽어낸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책임을 지고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그에게 겁을 주려 온 사람들도 호기있게 물리친다.
▲<싸이코패스 다이어리> 속 장면ⓒ tvN
이제 우리는 회사에서 육동식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그가 가져다 줄 시원한 사이다를 기대해볼 수 있게 되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것은 과거 내가 회사 안에서 당해야 했던 부조리한 일들에 대해 뒤늦은 위로를 받는다.
tvN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는 예전 드라마 문법을 고스란히 답습하면서도 자신을 싸이코패스라고 착각하는 육동식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조금씩 이야기를 변주한다. 싸이코패스의 연쇄살인, 회사에서 호구잡힌 육동식 이야기, 기억상실의 진부한 소재들이 합쳐질 때 나올 수 있는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는 이야기의 전개에 한층 기대가 커진다.
아직은 2부까지 진행한 터라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는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순경 심보경(정인선)과 그녀의 아버지 망령에 대한 사연, 진짜 싸이코패스인 서인우(박성훈)의 회사 내에서 권력 굳히기 작전이 어떻게 진행될까 여러 떡밥을 뿌려둔 상태라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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