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쿠다 미쓰요 <종이달>는 읽을 때보다는 책수다를 떨 때 더 재밌다. 그런 점에서 책수다를 하기 전
천근만근 같았던 내 몸을 질질 끌고 들어서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책수다에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하지..라는 고민이 나를 짓눌렀던 그때 그 무기력한 감정이 떠올랐기에...
혼자 책을 읽고 나서 막막했던 것은 책에 대해 할 말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논할 게 없어서라기 보다
는 이야기하는 순간 내 자신에게 젠체하는 나를 들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독자로서, 제3자로서 주인공 리카의 몰락을 보며 작가는
그녀의 불완전한 자의식을 보여주고 그 바탕 아래 자유를 추구할 때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 거야~라
고 설을 풀 수는 있었지만 이미 난 머리로는 '아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실제 내 상황이 되었을 때 얼마나 속절없이 무너
져버리는지,,통제불능의 상태가 되는지를 알고 난 후로는 선뜻 설을 풀기 힘들어진다. 나 역시 과거 훅~ 들어온 사회의 부조리에 상
처받아 그때 기억을 봉쇄해버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누구의 잘못이었는지..논하기 전에 그냥 고
대로 봉쇄해버렸다. 그 봉인된 기억이 어느 순간 폭탄이 되어 나를 가루로 만들리라는 걸 알았지라도 난 그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도 마주보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겁을 먹었다.
리카도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진행되는 남편의 태도에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런 남편의 태도가 자신 때문이
아니라 그역시 나약한 인간이고 그걸 숨기기 위한 몸부림였음을 아는 혜안이 있었더라면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싶다..하지만 그
녀는 그러지 못했다. 이렇게 그녀에 대해 평하면서도 낯뜨겁다. 내가 이런 말할 자격이 있을까 싶어서다. 나 역시 과거 나의 실패로
부터 도망쳤고 여전히 그것을 끄집어 내어 볼 용기조차 없다. 그게 부끄러워 책을 읽으면서 리카의 문제점을 짚어낼 수 있었음에도
차마 말을 떼지 못했다. 나역시 불완전한 존재니깐,,그러다 책 수다에 참여하면서 리카는 과거에 이미 치루었어야 할 경험들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며 그건 밀린 숙제를 안한거고 그걸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사건을 해결할 가치관을 세워
놓지 못한다.라는 클락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 구구절절 떠든 이 이야기가 '밀린 숙제'라는 단어 하나로 정리될 수 있다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걸까. 내 자신의
약함을 탓할 게 아니라 밀린 숙제를 안 해 세워야 할 가치관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지 않았음을 깨달아야 하는 게 우선이라는 걸 몰랐다.
같은 일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는 지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관이 드러나는 법. 밀린 숙제라는 단어에서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이며, 희망적인 어감을 잡아내면서 아차 싶었다.
여전히 나약한 나의 모습을 목격하고 난 이후로는 섣불리 다른 사람의 행위나 생각에 옳다 그르다를 논하기 이제 글렀다. 라는 생
각을 한다. 슬픈 일이지만 설 풀기를 즐겨하던 나로서는 좋아하는 취미를 잃어버린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처럼 그 기억을
떠올려도 가슴 한쪽이 욱신거리지 않음에 감사한다. 한번쯤 시각을 달리해서 보게 되면 해결되지 않는 상처란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 덕분이다.
늘 궁금했었다. 나는 왜 남들이 별거 아니다하고 넘어가는 일에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지를...어쩌면 그게 다 숙제를 미루고 미뤄
내 자신을 파악할 기회를 잡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닐까..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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