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책 리뷰

유명작가가 하루아침에 절필을 선언한다면?

고고와 디디 2020. 2. 1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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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표지 ⓒ 밝은 세상

세 편의 소설로 단숨에 유명작가가 된 작가가 하루아침에 절필을 선언한다면? 그의 독자는 속이 탈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신작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울 것이다. 어쩌면 어떤 애독자는 그가 칩거하게 될 지역으로 따라가서 옆에서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는 희망에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기욤 뮈소의 소설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은 유명작가가 하루아침에 절필을 선언한다면? 이라는 어쩌면 익히 들어봄직한 질문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주인공인 네이선은 30대에 단숨에 인기 작가로 급부상한 유명작가다. 그를 따르는 팬들도 많고 그가 작품을 통해 말하려는 ‘나와 타인들이 이루어가는 관계, 인생의 방향키를 제대로 잡으려 할 때의 어려움, 인간의 나약한 의지에 대해, 인간 실존의 허약한 부분’에 대해 논하기에 그를 롤모델로 삼아 작가가 되려는 팬들도 꽤 된다.

그런 그가 절필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속시원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이런 그의 부재에 실망한 작가 지망생 ‘나’는 그가 칩거하고 있는 지중해의 진주 보몽 섬으로 그를 만나러 간다.

분명 네이선이 절필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될 줄 알았는데 소설은 초반부터 그가 살고 있는 평화롭던 보몽 섬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보여준다. 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되고 경찰은 수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섬을 봉쇄해버린다.

동시에 네이선 앞에서 묘령의 여인 마틸다가 나타난다. 자신이 과거 네이선을 만난 적이 있으며 지금 보여주는 사진들은 네이선과 관련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녀는 누구인가? 네이선은 속시원하게 그들의 인연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 마틸다에 대해 알아간다.

그리고 2018년 현재 보몽 섬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과 20년 전 파리 7구 아파트에서 일어난 유명의사 알렉상드로 베르뇌유 일가족 살인사건 간에 연결고리를 알게 된다. 그리고 20년 동안 묻혀 있던 끔찍한 사건의 진실이 드러난다.

네이선이 잘 나가던 작가 생활을 접고 살아간 이유는 그가 사랑했던 여자를 잃었기 때문이다. 내전지역에서 일하던 그녀는 세르비아군에게 잡혀 살해당했다.

이후 그녀의 흔적을 찾기 위해 그녀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발칸반도에 갔는데 그녀의 죽음이 유명의사 알렉상드로 베르뇌유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가 유명의사 알렉상드로 베르뇌유의 반인륜적인 범죄를 고발하고자 애쓰는 사이 20년 전 베르뇌유 일가족 살해사건 현장에 있게 되었다. 네이선은 현장의 목격자로서 언젠가는 자신이 죽거나 자신이 누군가를 죽이게 될 것을 예상했었다. 2018, 현재 보몽 섬에 일어난 살인사건 범인을 알고 나서 마틸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이 세상에 진실은 존재하지 않아. 아니, 진실은 존재하지만 늘 움직이는 거야. 진실은 늘 살아 움직이면서 그 모습을 바꾸지.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눌 수는 없어. 우리네 인간은 모두 불안정하기 그지없는 회색지대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지. 이 세상은 대단히 훌륭한 사람도 고약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곳이야. (p.269)


마틸다는 베르뇌유 일가족 살해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막연하게 네이선이 범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범인임을 알고 나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네이선의 경고대로 진실을 알게 된 이 순간 감당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제목이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인 만큼 작가 지망생 ‘나’는 네이선과 함께 현재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조력자이자 그의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역할을 담당한다. 더불어 네이선과 ‘나’의 대화에서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다.

네이선에게 자신의 원고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싶어 ‘나’는 보몽 섬에 있다던 네이선 자택을 수소문해서 그를 만난다. 처음 만나서 네이선이 그에게 하는 조언이란 작가 말고 다른 직업을 알아보란 이야기이다. 글을 쓰게 되면 ‘대화 상대라야 기껏 머릿속으로 상상해낸 가공인물’일 뿐이라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유리된 삶을 살게 되고 고독한 삶으로 살게' 될 게 자명하다며 '좀비' 되기 딱 좋은 삶이라고 작가의 애환을 말한다.

네이선이 묘령의 여인인 마틸다를 만나고 나서 그녀에 대한 조사를 부탁하고자 '나'를 만날 때는 그의 원고에 대해 간략한 피드백을 주기도 한다. 그의 글은 읽는 동안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 피드백의 요점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네이선은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소설은 감정과 감동의 산물이야. 지적인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글이 아니지. 소설에 감정이 묻어나게 하려면 작가가 실제로 경험해보는 게 중요해. 작가라면 등장인물들, 그러니까 주인공이든 보조인물이든 잠시 등장하는 인물이든 그들의 감정을 오롯이 피부로 느낄 수 있어야먄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p.146)


프랑스 문단에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내놓은 작가 기욤 뮈소에게 독자들은 '역동적 스토리,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 눈에 보이듯 생동감 넘치는 묘사' 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었다.

이번 작품에서도 유명작가 네이선이 절필한 사건과 20년전 범인을 잡지 못했던 베르뇌유 일가족 살해사건의 비밀을 다루면서 두 가지 이야기로 보이는 듯하다가 한 이야기로 합쳐가는 치밀한 작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우리네 인간들의 불완전함을 드러내며 세상사를 이분법으로 나눠 설명할 수 없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대부분 안타까운 사건들은 상황 때문에 만들어진다. 가장의 추악한 비밀이 가족들을 병들게 하지만 그 이유조차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가족이기에 별 의심없이 살아가는 방관자적인 면모 등을 보고 단순히 악인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을 구하는 재능있는 의사였지만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위장자살을 꾸미고 가족들을 죽이는 일 등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서 작가가 선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을 그려내고자 했다는 점을 인지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그 입체적인 인물들의 다사다난한 삶이 생생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