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책 리뷰

[리뷰] 위저드 베이커리, 구병모, 빵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매일 빵집을 들린다?

고고와 디디 2020. 3. 2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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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라면 질색하는 아이가 빵집의 단골이라니 독자인 내가 모르는 한 조각의 퍼즐은 무엇일까. 소설이 좋은 것은 바깥 세상에서 늘상 들리는 앞뒤가 안 맞는 사건의 맥락을 필요한 진실로 촘촘이 채워주며 이야기해준다는 점이다. 평소 같으면 세상이 뭐 늘 그렇지. 부조리한 게 세상인걸. 하고 무심히 지나갈 일도 한번쯤 되샘기질하게 한다.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는 언젠가 한번쯤 접해본 실제 사건을 가져오면서도 보이는 것 외에 보이지 않는 것 또한 동시에 재구성해 보여준다. 그 과정 속에서 빵이라면 싫어하던 아이가 왜 늘 빵집에 들러 저녁 요기거리를 사가는지 그리고 그 속에 스며 있는 슬픔의 냄새까지도 끄집어 묘사해준다.

퍼즐 한 조각은 새엄마가 자기 식구만을 같은 공간에 들이려는 욕심 때문에 아이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공간인 아이의 방 안에서 의식주를 해결하게 됐다는 진실이다. 친아버지는 자정이 돼서야 들어오는 그를 내다보지 않는 아이를 원망할 뿐이다.
 

저녁이면 방에서 먹을 만한 빵을 사 들고 집으로 들어와서는, 현관문 바로 앞에 있는 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여기만은 내게 허락된 공간. (34p)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또 소설을 읽게 된다. 소설 속에서는 흥미진진하면서 재미있는 탐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는 아이가 배다른 여동생 무희의 성추행에 대한 오인으로 자신의 가족에게 쫓기던 중 우연히 단골 빵집으로 들어가면서 모험이 시작된다. 

우연히 몸을 피하게 되었는데 이 빵집에서 그는 특별한 모험을 하게 된 것. 마법의 효력이 있는 빵을 만들어내는 곳인 이곳에서는 밤이면 파랑새로 변하는 계산대 여자아이 그리고 마법의 빵을 만들어내는 점장이 있다.

지독하게 현실적인 사건을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환상적인 모험과 병렬시키는 작가의 태도에서 작가가 얼마나 어둑어둑한 현실 속에서 희망을 보는지, 얼마나 유머러스한지 알게 된다.


자신을 빵집에 피신케 해주는 점장을 위해 몽마의 습격에 대신 악몽을 꾸는 것을 자처하는 씬은 짧은 시간 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던 타인들하고도 정서적 교류를 얼마든지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동시에 악몽을 대신 꿔주는 장면에서 아이로서는 감당해내기 어려운 어릴적 엄마의 자살에 대한 트라우마를 동시에 보여주며 아이가 얼마나 외롭게 살아왔는가를 전해준다.

아이가 빵집에 들이닥친 그 순간 가족의 누군가에게 구타를 당하고 뭔지 모를 이유로 쫓김을 당한다는 것을 금세 파악한 점장과 달리 학교 상담 선생님은 아이에게 해주는 이야기는 고작해야 마음을 열라는 피상적인 말 뿐이다.

새엄마가 자신을 못미더워하는 이유도 잘 알고 그렇다고 집을 당장 나가 살 곳도 없는 상황에서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해봤자 구차하고 이야기가 돌고 돌아 새엄마 귀에 들어가면 서로에게 상처만을 남길 게 뻔한 데  어디 한 곳 토로할 데가 없다. 그리고 그런 걸 알아내기에는 상담 선생님은 상담할 아이가 많았고 한 아이에게만 관심을 쏟을 수 없었으리라.
 

배 선생이 내게 사소한 장면들을 하나하나 얹어주어 무게감과 압박감을 키운 것 못지 않게, 그녀 자신에게도 누적되는 고통들이 있었으리라는 짐작은 쉽게 갔다. 따로따로 떼어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 그러나 마치 원소들이 모여 분자를 이루는 것처럼... 그렇지만 그게 내 탓은 아니잖아. 나는 단지 거기 존재했을 뿐인데. (32p)

 
'그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막다른 길에 아이에게 선물같이 선사된 <위저드 베이커리>에서의 생활은 잠시나마 몸과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