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 오고 누구 말마따나 엉덩이 들썩들썩대고 마냥 사람들과 속닥거리고 싶은 날..
시집 발제 끝나고 나서도 내내 집에 가기가 싫은 날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발제의 여운 덕분이었죠.
아련하고...
애틋하고 ....
저절로 겸손해지는.... 느낌을 주는 박준 시인의 화법 때문이죠.
유난히 나의 시선을 끈 건 시 <마음 한철>이었습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원하지 않은, 그것도 과거형으로 점철되어 있는 이 시는 말 그대로 끝남을 전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여기서 한 일 년 살다 갈까?"라고 말을 꺼내는 미인의 말을
화자는 "여기가 동양의 나폴리래."라고 싱거운 말로 받아냅니다.
가장 로맨틱할 수 있었던 순간을 참 벙찌게 만들죠.
근데 이런 화자의 담담함이 전 왜이리 아련할까요?
정작 화자는 절벽으로 뒷걸음치는 미인의 손을 잡아 안전한 쪽으로 잡아당기죠.
어차피 끝날 것 알면서도 사랑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어차피 끝날 건데.. 라는 말은 참 제가 많이도 되뇌이던 말이더라고요.
그래서 내 삶도 저 화자의 삶처럼 담담하고 애틋하면서도 가장 행복한 순간조차도 눈시울이 시큰해져오나 봅니다.
그런데 그런 정서가 전 참 좋아요. 그렇게 시리고 아련하고 애틋한 게
그 기분이 너무 좋아요. 아이러니죠.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건 그 아련함을 붙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부터인듯해요.
발제를 하면서 함께 시를 공유하던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건 참 즐거웠습니다.
거리두기에 관심이 많다고 강조하는 사람의 속내도, 시를 읽으며 이미지가 그려져서 좋았다는 그 사람의 속내도 참 궁금해지더라고요.
그 잔상이 아직도 남아 있네요.
평소에는 내뱉지 않을, 마음 깊숙이 있는 말들을 듣게 되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문학은 그래서 정말 놀라운 것 같아요.
많이 궁금했지만 일단은 여기서 만족했습니다.
또 다시 들을 기회가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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