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자에게 주어지는 행운은 사유를 통해 자신을 조련할 수도 고문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소설 <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 속에서 한 권뿐이지만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박상호의 고뇌가 차지하는 부분은 꽤 오랜 시간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놓는다. '부풀려진 이미지를 지우고 진실을 쓰고 싶은' 독재자 리아민과 다시금 베스트셀러로서의 작가로 돌아가고 싶은 박상호의 잔뜩 부풀어오른 욕망의 대치는 박상호의 번민에 몰입하게 만든다. 시작은 전기 의뢰와 그것을 수락한 작가 박상호의 이야기였지만 리아민의 전기를 완성하기까지 오랜 호흡이 필요했던 것은 박상호가 많은 지면에 그의 사유로 범벅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독재자 리아민과 그의 부인 최세희와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이 말한 에피소드 중에 윤리적으로 비난받지 않을 이야기를 취사선택해서 써내려가는 것은 소설가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삭제해야 할 이야기와 부풀려야 할 이야기를 분류하는 일뿐 아니라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에피소드를 자기 선에서 지워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특정 에피소드를 넣으면 더 생생하고 입체적인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음에도 그것을 윤리적인 입장에서 제어하는 노력은 문장과 이야기로 사람들을 이목을 집중시키고 싶은 소설가의 욕망을 누르고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족이지만 나 역시 현재 몸 담고 있는 단체에서 모임 후기를 습관적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개인의 감상과 그날 모인 사람들에 대한 묘사를 할 때 혼자만의 감상문으로 전락하지 않게 그 수위를 조절할 때 이 같은 번민을 하곤 했다. 한 사람만 묘사해서도 안되며 특정 인물에 감정에 몰입된 것을 들키지도 않게 두리뭉실 묘사하면서도 상세적인 면 또한 담겨 있게 글을 쓰느라 다소 진을 빼곤 했다. 나름 이니셜을 써서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긴 하지만 조금 더 자세하게 그들과의 대화를 첨부하면 생생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윤리적인 면 때문에 그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를 조절하지 못해 사생활이 노출되거나 쓰는 나의 감정이 도드라질 때면 같은 후기에 대해 두 편을 써서 한 편은 나의 일기장에 다른 한 편은 모임 게시판에 올렸다. 이는 가감없는 나의 감정이 담긴 글을 보존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소설 <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이 다른 상업적인 소설과 다른 이유는 전기를 쓰는 작가 박상호에게 닥친 위기마다 그의 사유가 삽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 때문에 독재자의 전기를 쓰는 베스트셀러 작가 박상호의 고군분투기라는 어디서 들어봤을 줄거리보다 작가 박상호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박상호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진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보여지는 면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항상 그 이면을 생각해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술 더 떠 작가들은 외면과 이면의 괴리감을 읽어내고 주구장창 그 위선을 지면에 그려내는 걸 좋아한다. 박상호가 그런 부류의 작가의 하나인 것처럼 말이다.
전반부가 노련한 거짓말쟁이 독재자 리아민이 어떻게 박상호를 구워삶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후반부는 제대로 뒷통수를 맞은 박상호가 이 사태로 인해 일어난 사건들에 어떻게 대항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박상호의 자기 비판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후반부에도 지루하지 않고 박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소설 <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을 읽으며 놀랐던 점은 다른 소설과는 조금 다른 화법 때문이었다. 박상호가 들은 리아민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다른 작가로 인해 결국 완성된 작품의 selling point로 작용했던 점이다. 인생이 재미있는 것은 예측하지 못할 일들이 일어났을 때의 그 쾌감 때문이다. 물론 안 좋은 일들도 많지만 이 소설에서 느낀 것은 전자의 쾌감이라는 점에서 이 부분만 짚어본 것이다. 철저하게 작가의 계산 하에 계산된 소설임에도 순간 내가 논픽션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닌가...착각을 불러일으킨 장면이다.
소설가로서 자신의 이름 석자를 알리기를 욕망하던 박상호는 그 욕망을 리아민에게 들켜버리고 결국 다른 이의 필력으로 이름만 빌려주는 껍데기이자 거짓말쟁이인 작가로 전락한다. 그 순간조차도 박상호는 번민하지만 이미 써진 전기가 반응이 좋자 기자들과의 인터뷰에 응하고 그 자리에서 자신이 들은 리아민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풀어놓으며 기자들의 구미에 맞는 소재를 던져준 격이 되어버린다.
사회에 첫 발걸음을 할 때 늘상 하는 실수란 눈앞에 보이는 위선에 눈감지 못하고 지적질하지 못해 혈안이 된다는 점이다. 위선 하나하나를 고발하는 과정 속에서 얻는 것은 분노조절장애자나 노련하지 못한 수식어뿐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분명 올바른 행동은 그렇듯 인생의 부조리함을 밀고하는 것이지만 바깥세상에서는 박상호가 자신이 내지 않는 작품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읊조리는 따위의 자기 연민일 뿐이다.
소설 <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이 직장생활에 환멸감을 느끼면서도 적당히 타협하고 지내는 나와 같은 독자를 잠시나마 위로해주는 것은 박상호가 작품 끝머리에서 자신의 찌질함을 토로하는 장면 때문이다. 그리고 기묘한 세상에 대해 정확하게 묘사해주는 장면 때문이다. 길거리에 정처없이 흔들리며 걷던 박상호가 다가오는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욕을 해대는 무리들에게 '그래,,너희들이 옳다.'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를 미친놈 취급하는 세상에 대한 묘사는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계속 여운이 남는 이유다. 그리고 세상과 타협하는 순간순간마다 이전보다는 내 자신을 찌질하게 보지 않고 안쓰럽게 볼 수 있게 한다.
후반전에 보여줄 반전 때문에 다소 지리멸렬하고도 자세하게도 리아민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전반전에 뿌려댄 것이 소소한 결점으로 보여진 것은 아마도 이렇듯 인상적인 결말 때문이리라. 덕분에 오늘 하루 다시 힘을 내서 살아가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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