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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방송, 유투브 리뷰

부모를 고소하지 않았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끔찍한' 비극

by 고고와 디디 2019.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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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개봉한 영화 <가버나움>은 현재 세계 곳곳에서 난민 위기를 겪고 있는 실제 상황을 체감하기에 제격인 영화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라는 난민 어린이 자인의 외침은 이후 법정에서 세상에 대한 비판으로 확장된다. 부모는 건사할 대책도 없이 아이를 계속 낳고, 난민 어린이들은 길거리로 내몰리지만 사람들은 무관심 하다. 레바논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12살 소년 자인은 출생 기록조차 없다. 그는 부모에게 보호받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도 외면 받는 상황에서 부모를 고소하기에 이른다.

잘 짜여진 극 안에서 비전문 배우들은 자연스러운 호연을 펼친다. 이 영화는 칸국제 영화제에 초청돼 약 15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았으며,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이어 안탈리아 국제 필름 페스티벌 BEST ACTOR 수상, 뉴 멕시코 필름 크리틱스 어워즈 BEST YOUNG ACTOR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여성 감독 나딘 라바키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1차 후보에 아랍 여성 감독으로는 최초로 이름을 알렸으며 영화 그 자체로는 레바논 최초로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개봉 당시 "배우들의 진정한 연기", "두 아이의 놀라운 연기"라며 언론과 평단은 하나같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는 시장에서 배달 일을 하는 시리아 난민 소년, 불법 체류자, 레바논에서 차별을 받으며 가족과 체류 중인 실제 인물을 캐스팅해 직접 보여주기를 택한 결과이다.
 

                                                               ▲영화 <가버나움>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


12살 아이가 부모님을 고소한다는 설정은 자인의 인생에 대해 궁금하게 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관객들은 순간 무수한 예측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이유가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기 때문'이라는 답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생존을 넘어서 자기 인생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답게 살아가기 힘든 삶 속에서 살려달라는 호소나 다름없다. 부모님을 고소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세상에 대한 발길질이다.

자인은 부모에게 실망해 가출을 한다. 그리고 불법체류자 라힐과 그의 아이인 요나스를 만난다. 라힐, 요나스와의 삶은 자인 부모님의 부족한 면을 도드라지게 보여준다. 또 동시에 난민들의 삶이 하루하루 전쟁터임을 비춘다.
 

                                                                                ▲영화 <가버나움> 속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자인은 아이들이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자인의 부모는 한 입이라도 줄이기 위해 이제 11살인 여동생 아사르를 결혼시키려 하고, 자인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여동생을 구출하는 데 실패하자 자인은 집을 나가 버린다. 이때 만난 청소부 라힐과 그녀의 아이 요나스는 자인의 부모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간다.

라힐은 아들 요나스를 끝까지 붙들고 함께 살고자 애쓴다. 하지만 그도 불법체류자라는 약점 때문에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며 아이의 출생 등록조차 못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영화는 부모님을 고소한 현재 자인의 재판과 과거 자인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치는 장면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부모의 방식과 라힐의 방식을 뛰어넘는, 처절하지만 계획적인 자인만의 생존방식도 보여준다.

불법체류자인 게 들켜버린 라힐이 잡혀가고, 자인은 요나스와 단둘이 남는다. 그는 트라마돌 주스를 팔아가며 요나스의 우유랑 기저귀를 산다. 때로는 아픈 요나스를 위해 푸드뱅크에서 거짓말을 해 물품을 타내기도 한다.
   

                                                            ▲영화 <가버나움> 속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자인은 부모를 고소한 이유로 다음과 같이 답한다. "태어나게 했으니까요. 이 끔찍한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게 그들이니까요. 영화가 끝날 때쯤 되어서야, 자인에게 출생기록도 신분증도 없다는 사실이 등장한다. 자인은 살기 위해 스웨덴으로의 이주하려 하지만, 그조차 불가능해진다. 그 곳에는 시리아인 동네가 있어 차별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인은 그곳에 가고싶어 했다. 원하는 바가 계속 무산되는 상황 속에서 자인은 절망에 찬 말을 내뱉게 했으리라.

조혼으로 남의 집에 보내진 여동생 사하르의 죽음. 불법체류자인 것이 발각돼 자신의 아이조차 지켜주지 못한 라힐의 무기력함. 죽은 아이를 추모해줄 여유조차 없는 자인의 부모님. 

감독은 "부모님을 고소하기로 결정한 소년의 솔직한 눈빛을 통해 어떤 이유로든 무시당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변하는 한 소년의 싸움을 보여주려 했다" 말한 바 있다. 그 진정성은 통했다. 관객들은 레바논이 겪는 난민 위기를 12살의 아이의 몸부림에 몰입해 그 실상을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노력은 실제 배우들의 삶에도 영향을 주었다.  '자인'을 연기한 자인 알 라피아는 칸 영화제 이후 유엔난민기구의 도움을 받아 가족과 함께 노르웨이에 정착했으며 '요나스'를 연기한 트레저와 가족들은 케냐로 돌아가 불법체류자의 신분에서 벗어났다. '사하르' 역을 맡은 시드라는 유니세프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