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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방송, 유투브 리뷰

9.11 테러 이후 발생한 또 다른 비극 "난 테러리스트 아냐"

by 고고와 디디 2019.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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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내 이름은 칸> 포스터ⓒ 필라멘트 픽쳐스


200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한 남자가 혼자 중얼거리며 손에 한 가득인 돌을 만지작거리며 불안정하게 몸을 움직인다. 사람들의 신고로 따로 방에 끌려들어가 물건을 검문 당하는데 위기에 벗어났다 싶으니 이 남자는 워싱턴 D.C에 왜 가는지 묻자 '내 이름은 칸,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라고 말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가야 한다고 거듭해서 말을 한다.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종교 간의 갈등으로 9.11 테러로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면서 많은 미국인들이 죽은 비극에 대해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를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2011년, 카란 조하르가 연출한 인도 영화 <내 이름은 칸>에서는 아스퍼거 증후군(자폐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의 눈으로 본, 이슬람 교도인이기에 당할 수밖에 없는 폭력과 모순을 잘 드러낸다.

칸은 아스퍼거 증후군(자폐증)을 앓고 있다. 운이 좋다면 감정표현이 다른 아스퍼거 환자보다 조금 낫다는 점이다. 물건을 고치는 데 재능이 있으며 암기력도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주로 단어만을 내뱉으며 반복적으로 같은 단어를 내뱉는다. 통째로 들은 문장을 암기해 그대로 재현해 내기도 한다.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세상에는 좋은 행동을 하는 좋은 사람과 나쁜 행동을 하는 나쁜 사람, 단 두 종류의 사람만 있다"라는 자신만의 삶의 원칙을 세워두고 모든 상황을 이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영화의 주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에서 화장품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중 칸은 미용사인 싱글맘인 만디라를 좋아하면서 그녀와 그녀의 아들 샘과 가정을 꾸린다. 퍼즐 대회 일등에 보기 드문 지적 능력으로 샘을 공략하고 사랑하는 여자의 미소에만 관심있는 로맨티스트 면모 덕분에 만디라를 사로잡았다.

 

                                                                              영화 <내 이름은 칸> 속 한 장면ⓒ 필라멘트 픽쳐스


하지만 이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1년 어느 날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비행기 자살 테러로 일어난 9.11 테러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무슬림인 칸의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로 아들 샘이 백인 아이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해 죽었다. 만디라와 칸은 아이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파헤치고 아들의 죽음을 위로한다.

만디라는 샘의 죽음이 칸이 무슬림이기 때문이라고 그를 힐난한다. 자신과 다시 만나려면 미국 대통령에게 가서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니 자신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자행되는 폭력을 거둬달라고 이야기하라고 한다. 하지만 칸이 정말로 미국 대통령을 찾아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아들을 잃은 부모가 자식의 죽음을 위로하는 각기 다른 방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종교로 인한 오해로 일어난 비극에 대해 체감하게 연출했다. 그녀와 헤어지고 칸은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머나먼 여정을 떠나게 되고 만디라는 6개월 동안 아들 샘을 죽게 한 용의자를 찾아내려고 사방팔방 돌아다닌다.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이며 이슬람교도인 칸(샤룩 칸)의 여정이 녹록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칸은 무슬림 집단에 들어가 테러를 모의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FBI에 이를 고발한다. 하지만 공항에서 한 이상한 행동과 금기어 테러리스트라는 단어를 내뱉는 바람에 끌려가 15일이나 구류 당한 칸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영화 <내 이름은 칸> 속 한 장면ⓒ 필라멘트 픽쳐스


만디라(까졸)는 경찰로부터 사건부터 6개월이 지나도 용의자를 찾지 못해서 사건을 종료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이대로 샘의 죽음은 묻히고 만디라와 칸은 평생을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게 될까? 게다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말하려고 미국에 간 칸은 오히려 테러리스트로 범죄자가 될 것일까?

어쩌면 영화가 아닌 미국 사회에서 혹은 미국인으로부터 무슬림으로서,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로서 약점 투성인 이들이 이 세태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사람들은 이미 그들을 범죄자로 낙인찍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 자폐협회로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자폐협회에서 그의 특성 때문에 범죄자로 오인 받았다는 점을 직시해서 그를 돕기 위해 나섰다.

그리고 칸에게는 그를 믿고 사랑하는 그의 가족이 있다. 형수에게 FBI 전화번호를 물어봤다는 형수의 증언으로 그의 혐의는 벗겨지고 있었다. 그의 행보에 흥미를 가진 기자의 취재 덕분에 칸은 그가 아프거스 증후군 환자여서 원할한 의사소통이 부족해 테러리스트로 오인 받았고 그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FBI에 테러를 고발한 사람이라는 점이 밝혀진다.

9.11 테러 이후 무슬림 집단에 대한 사회적 정의는 이미 내려져 버렸다. 그리고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는 시선마저 생겼다. 아스퍼거 증후군(자폐증) 환자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다. 몇 가지 특정된 습성으로 그 사람을 판단내리기 때문이다. 낙인이란 이렇듯 무섭다.

하지만 제작진은 "힘든 세상에서도 희망을 노래하고 교훈과 감동"을 주기위해 온 힘을 다해 연출을 한 듯하다. 가장 벼랑 끝으로 내몰려 있는 집단 속 인물인 칸을 내세워 그가 겪는 고초를 간접적으로 보면서 편견을 내려놓았을 때야 진실이 보인다는 점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