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에서 단절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났거나 힘든 일이 일어났을 때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배려해서(?) 근황을 묻지 않기 시작한다.
그런데 한명이라도 나에게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보기를 바란다.
<붕대감기> 속 은정도 아이가 이유모를 병으로 의식을 잃고 있을 때 “서균이는 잘 있나요?”라고 물어봐주기를 바랬다.
그리고 아이 친구인 율아가 그것을 물어봐주었다. 율아 엄마는 딸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은정에게 근황을 물어보기를 바라지 않았다.
서균이 엄마가 상처를 받을 까봐서다.
…아이는 아직 모른다. 달착지근한 마카롱 몇 개나 갑작스럽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 같은 것으로는 괜찮아지지 않는 일들이 세상에 아주 많다는 것을.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일이 점점 더 겁나는 모험처럼 느껴진다. 결과가 안 좋을 때가 더 많기 때문에. 그러나 나는 그녀를 걱정하고 있었고, 그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굳이 물어보았다. 나 역시 누군가가 그렇게 물어주기를, 종종 장미가 비를 기다리듯이 기다리게 되므로. (p.55)
아는 것이 많아지면서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표현조차 함부로 할 수 없어진다.
점점 때가 타는 거겠지. 그게 삶을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걸 잘 알지만 <붕대감기> 속 이런 에피소드는 과연 그런 방법이 옳은 것일까..의문을 준다.
오랜만에 정통 소설을 만난 것 같다. 겉치레는 커녕 담담하다 못해 지독하리만큼 냉정하게 인물들 사이를 배회하며 그들의 심정을 도려내 보여준다는 점이 정말 오랜만에 맘에 든다.
'Review > 책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애란 소설 ‘바깥은 여름’ (입동) 리뷰, 끝맺음을 하지 못한 어떤 기억에 대한 예의 (10) | 2020.06.12 |
---|---|
소설 ‘붕대감기’ 리뷰,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달라졌을 뿐인데 변화를 대뜸 눈치챈 친구 (6) | 2020.06.10 |
윤이형의 <붕대감기> 리뷰 두번째 , 아무것에도 기댈 것 없는 여자가 미용실 앞에 멈춰선 이유 (6) | 2020.06.09 |
윤이형 작가의 <붕대감기> 리뷰, 소설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고객에게 추천하고 고민에 빠진 헤어디자이너의 이야기 (6) | 2020.06.09 |
[리뷰] 롭 무어의 <레버리지>, 타인의 재능으로 돈벌기 (8) | 2020.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