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책 리뷰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고

고고와 디디 2017. 2. 4.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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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김영하 작가의 비평을 즐겨 보는 팬으로서 사실 소설보다는 이런 비평류에서 그의 진가가 발휘된다고 생각했는데..그래서 책수다하기 전 약간은 소설의 허술한 반전에 참 많은 불평거리를 들고 갔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치매에 걸린 살인자의 이야기에 의존해서 읽어내려갈 수밖에 없어, 나중에 밝혀진 반전을 알게 되어서 헛웃음이 나올지라도 뭐라고 반박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김영하 작가의 힘이라면 힘이겠다. 그만큼 영리하게 계산해 나(살인자)의 목소리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참 허술하다 말하고 싶다가도 잘짜여진 주인공 하나 때문에 불만거리도 말하기 힘든 상황. 

석연치 않은 기분이 계속 들다가 수다 중에 나온 단상 하나로 졸작에서 대작으로(적어도 나에게는) 바뀌었다. 그건 치매에 걸린 살인자의 살인이야기는 외피일 뿐 그것을 걷어내면 여러가지 질문을 독자인 나에게 던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한다. 

너는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너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야기를 읽는 도중에 살인자가 자기공간을 갖는 것과 뭔가에 몰입할 때 행복함을 느낀다는 점이 참 나와 비숫하다 느껴 수치심을 느꼈지만 (내가 살인자와 동일하게? 이게 무슨 일이지? 따위의 상념들 때문에) 수다를 떨며 이내 그래 <살인자의 기억법>은 살인자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인 나에게 너는 그래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어떤 것이 널 행복하게 만드는 가 따위의 질문을 던지는 정말 중요한 측면을 놓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이지 아찔하다. 책수다가 아니었다면 이런 사실조차 모르고 끝까지 이 책은 졸작이다라는 망언을 하고 있었겠지.


참말이지 작가는 어쩌면 무리수를 둔 것일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는 플롯이었지만 이 책에서는 그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오고간다.
그리고 성공했다.
살인자가 가족을 이루고 싶어하고 가족을 보호하고 싶은 그 마음을 나는 읽어버렸기 때문에.
선입견을 뛰어넘게 했다는 것은 더이상 난 주인공을 살인자가 아닌 치매 걸린 한 인간으로 읽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내 입에서 살인자가 불쌍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다니.....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다.

또 하나, 수다에서 반복되어 거론된 건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요즘 내가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쌓아올린 소중한 인간관계에서 어느 하나로 어긋나 그 관계가 깨져버리면 그동안 믿어 왔던 인간관계에서의 나의 과거 기억은 같이 붕괴되어지는 건데...
난 그 순간이 두려워 되도 않는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일 수도.
내가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선(가치관)도 이제 속절없이 흔들려버린다. 내가 생각한 이것이 맞는 건가? 이렇게 가슴이 쓰린데 그럼에도 나는 가치관을 바꾸면서까지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참아내야 하는 걸까 따위의 단상들을 쏟아부었다.

p.s 오늘 처음으로 맛수다도 겸한 책수다도 겸했는데 너무 좋았다. 가던 집만 가는 나라 이렇게 맛집, 찻집을 하나둘씩 모아가는 재미가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