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책 리뷰

[82년생 김지영 후기] 과도한 친절은 독이 될 수 있으니

고고와 디디 2017. 4. 2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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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은 놀랍게도 읽는 내내 내 인생을 스캔했다. 케케 묵어서 이젠 기억도 나지 않은 예전의 일까지 생각나는 걸 보면 <82년생 김지영>이 왜 베스트셀러로서 위력을 발휘했는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82년생 김지영>에서 주인공이 술회하던 장면 중 밤에 학원에서 집으로 가던 중 누군가 말을 건네는 장면이 있다.

데려다 주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뜬금없는 이야기에 김지영은 순간 말을 거시는 분은 누구냐고 저를 아시느냐고 물어보고 싶어하는 속내를 드러낸다. 거절을 하는 와중에 상대방 남자는 빈정 상했는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너 항상 내 앞자리에 앉잖아. 프린트도 존나 웃으면서 주잖아. 맨날 갈게요. 그러면서 존나 흘리다가 왜 치한 취급하냐?"


김지영은 순간 당황하면서도 모멸감을 느낀다. 얼굴도 모르는 네가 나도 모르는 나의 의중을 멋대로 지어내서 이렇듯 폭력을 행사하는구나~ 요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참 신기하다 생각했다. 나도 과거 수능을 준비했던 시기 한 남자애의 엉뚱한 상상에 몇주 동안 불면증에 앓은 적이 있기에 그때 시작된 불면증은 정말 긴장되는 날엔 재발할 정도로 문제다.


한 남자애가 있었다. 같이 학원을 다녔었는데..그 아이의 존재감도 모를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날
장난식으로 시작되어 학원 선생님까지 장난에 합류해서 그 아이의 외모에 대해 희화화하기 시작했다. 장난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폭력일 수 있는 일이었는데 선생님은 나에게 그 아이와 사귈 수 있냐고 짖궃은 질문을 했고 난 답하기도 전에 그애가 순간 겪는 불안감, 떨림, 당황스러운 감정이 먼저 읽혔다.

이후 내 눈에는 그애가 눈에 띄기 시작했고 그 애 옆에도 앉기도 하면서 전혀 그애가 외모로  주눅들 거 없다는 듯이 행동했다. 비극은 그런 친절이 그애에게는 독이 되었다는 점인데 그애는 내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하기 시작했고 열등감과 맞물려 나에게 차갑기 대하기 시작했다.

나는 전혀 그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고 너를 알지도 못했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과 내가 친절을 베푼 것이 또하나의 폭력 수도 있었음을 깨닫으며 그 두 가지 생각이 상충되어 잠을 내내 못 이루었다.

물론 김지영이 소설 속에서 술회했듯이
 
"근데 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더 많아요. 난 안다. 잘해주면 더 잘해 주는 인성이 된 남자가 있을 거라고."


가 맞다는 걸 안다.


하지만 현실에서  난 그런 남자를 만나본 적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 반전이라면 반전이겠지.어쩔 수 없이 배려하는 것을 즐기는 성격을 버리지는 못하였으니 드러내지 않도록 참 많이 노력하지만 어느새 똑같이 행동하는 내 모습을 본다. 그리고 을로 전락하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까지도...덤으로 갖게 되었다.

책을 읽다보면 느닷없이 사유가 나를 덮쳐버리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묘하게도 그때마다 희열을 느낀다. <82년생 김지영>은 이야기로서 나를 홀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내 인생의 편집본을 다시금 나에게 들이민 유일한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수다에서 다뤘던 책 중에 가장 재미없었지만 가장 이야깃거리가 많았던 묘한 매력이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p.s 우리 책수다 식구들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B가 이야기해줬듯이 이젠 얼굴만 봐도 제스쳐만 봐도 흥이 나는 것 같다. 너무 즐겁고 애정하고 기쁘고 그렇네. 새로 오신 M님도 조곤조곤 이야기하시는 매력이 있고..B는 걸어다니는 사전같고 우리 기존 멤버는 말할 것도 없이 하나같이 개성이 있는 것 같아 너무 좋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진짜 집에 가기 싫었다. C 오빠가 이야기하듯 야유회도 가고 그런 이벤트 있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