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책 리뷰

<위화의 인생 후기> 가끔은 숨도 좀 고르고...그렇게 살자

고고와 디디 2017. 5. 28.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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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이번 책 <인생>은 읽어내려가기 시작하면서부터 한 챕터를 넘기기가 힘들었다. 앞부분에서부터
상념들이 덮쳐와서 그것들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다음 페이지를 펼 수 없어서였다. 나를 오래토록 잡아 끈 건 화자가 자신의 직업을 담담히 묘사한 부분이었는데 화자는 스스로 지칭하기를  '한가하게 '놀고 먹기 좋은 직업'을 가졌는데 촌에 가서 민요를 수집하는 일임을 언급했다. 근데 내가 봤을 때 다음 구절을 보면 화자는 농민들의 삶도 함께 길어올리는 일을 하는 듯하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일은 저녁 무렵 농민들의 집 앞에 앉아 그들이 우물물을 길어 땅바닥에 뿌리며 풀풀 날리는 먼지를 잠재우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남들보다 예민한 데다 상념 또한 많았던 나로서는 예전 같아서는 화자의 모습이 말 그대로 노닥거리는 것으로만 보였을 텐데 이상하게도 그런 화자의 유유자적한 모습에 홀가분한 감정이 들었다. 화자와도 너무나도 닮은 R를 떠올리며 히죽 웃고 있는 나를 보고서는 깜짝 놀랐지만 나쁘지 않아 상념을 계속 이어갔다. 예전 같으면 저렇게 사는게 과연 행복할 까라는 생각이 들곤 했지만 요즈음은 R하고 이야기할 때면 이렇게 걱정하는 게 쓸데 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이끄는 건 운명이 8할이고 그 운명이 결정되는 건 타고난 성격대로 빚어지는 것일 터, 좀 더 잘 살아보겠다고 전전긍긍한 게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이 겹쳐온다. 책이란 토론이란 이래서 참 놀랍다. 생각의 방향을 바꿔준다. 책이 주는 영감과 나의 사유가 혼합되어 제 3의 깨달음이 온다.

늘 그래왔지만 이번처럼 강렬한 이유는 아마도 내가 슬슬 나의 반려자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계획 세우기를 즐겨하고 완벽하게 실행했을 때 비로소 오늘 하루는 잘 보냈다고 생각하는 내가 어떤 사람과 살아야 행복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지금 하고 있다. 겁이 많고 생각이 많아 인간관계에서 조심스럽고 더딘 나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생각하고 보니 생각을 한번 하면 침잠되는 나에게 그건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나에게 툭 말을 던져주는 화자와 같은 사람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과장 좀 보태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멋지다고 살아온 나이지만 인생 속 화자와 주인공인 푸구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보다보니 자꾸 그들의 삶을 곁눈질을 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걱정없이 묵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실존인물 R에 대해서 생각을 달리 하게 되는 것도 시간의 흐름 때문은 아닐 터다. 지금 나는 지쳐있고 쉬고 싶다는 신호일 터다. <인생>을 읽지 않았다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몰랐겠지. 나에게 보내는 내 자신의 SOS의 신호조차 눈치채지 못했겠지. 

사람이 타고난 성격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너무 깊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툭 말을 건네는 사람이 평생 함께 할 사람이라면 조금은 쉬어가며 살 수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P.S 이번 토론에서는 뒤에 영어 회화 스터디가 붙어 있어서 최대한 쉬지 않고 준비해간 상념들을 멋진 사람들과 많이 나누려고 했다. 그래서 그런가 후기를 쓸 때 글감이 딱 하나 남아 있어 선택의 여지 없이 그걸 중심으로 남겨서... 다소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지루할지 모르겠다고 변명아닌 변명을 해야 될 것 같다.

더 강렬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토론에서 이미 해서 그런가. 이번에 글쓸 때도 오래 걸린 듯. 이번 모임에서도 역시나 정겨운 얼굴들과 함께 해서 좋았는데 절대 미각을 지니시고 간결하지만 날카로운 말 한마디로 좌중을 웃게 한 안젤라 분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 책을 미처 정하지 못하고 나왔는데 다음에는 또 얼마나 놀래킬지 기대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