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곤 작가의 '여름, 스피드'를 1독하고 느낀 감상은
웹소설만큼 페이지가 빨리 넘어가고
웹소설은 한번 보면 질려서 2독하기는 힘들지만
'여름, 스피드'는 또 읽고 싶다는 것이다.
주인공 '나'는 6년 전 단 3주를 만난 연인(?) 영우에게 차였다.
그런 '나'는 영우가 뜬금없이 만나자고 하니
(이해는 잘 안되지만) 다시 만난다.
그리고 영우를 만나던 6년 전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서 이불 킥하는 주인공 '나'의
모습까지 한 호흡에 담겨져 있다.
2009년의 나를 떠올리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나는 갑자기 소름이 돋아 선풍기를 꺼버렸다.
서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살이 속빠져서는 촌스러운 파마머리를 한 채 영화의 끝자락이라고 잡고 싶다는 등, 깽판이 되더라도 한번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등 내가 카메라 앞에서 지껄인 말들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복기되었다.
그 말도 나도 이제 너무 낡아 버려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p.69)
현재에서 과거를 보면 그때 나의 모습은 참 촌스럽다. 그런 기억의 흐름을 잘 묘사한 대목이다.
'여름, 스피드'는 이런 식이다.
나도 느껴봤을 펑범한 감정을 가져온다.
설마 이런 게 소설이 될 수 있나 싶게
주변에서도 잘 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
그런데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
6년 전 연인을 만날 때 순간순간이 너무 소중해서 하루하루 그와의 만남을
메모장에 정리해나가던 '나'의 모습에서 내 자신을 기억해냈듯이..
날 차고 간 그 사람이 뻔뻔스럽게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만나려는 그 제안에도
그저 외로왔고 누구든 만나고 싶었다는 그 한 마디에
나 역시 쉽게 그를 용서하고(?) 만나주는 주인공 '나'의 모습에 설득당했다.
'여름, 스피드'를 쓰던 김봉곤 작가도 사랑에 대해 절박하니만큼
올인한다. 순간순간 사랑을 두고 희로애락을 느낀 그 감정 하나라도 놓치는 게
싫다는 듯 그렇게 써내려간다.
이런 점 때문에 이 소설에 쉽게 빠져들었던 것 같다.
나 역시 내 인생의 8할은 사랑이었으니깐.
이번에는 갑과 을의 사랑이다.
당연히 '나'는 그 사람에게 을이고 영우는 갑이다.
그리고 갑은 을의 마음 상태보다는 자신의 마음 상태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러한 면은 다시 을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을로서 사랑을 해 본 경험이 있기에 이에 대한 '나'의 독백은
가슴이 아프다.
한때라도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을 앞에 두고, 더군다나 내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그 남자들이 얼마나 잘생겼고, 몸이 좋고, 능력 있고, 그래서 감당하기 벅찼는지, 그리하여 '내'가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외로웠는지 운운. 나는 왜 내가 느꼈던 감정을 영우가 이야기하는 지 좀 어리둥절했다. 그걸 아는 애가 그럴 수 있었다고?
이제야 깨달았다고 해도 그걸 지금 내 앞에서 말한다고? (p.83)
사랑은 이기적이다.
마음의 크기가 항상 한쪽이 더 크기 마련이고
그리고 그 사람은 참 마음이 아플 때가 많다.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 찰나 하나하나가 비수가 되서 박힌다.
그렇다고 먼저 헤어지자고 못하고
그저 그를 언제 잃지 않을까 살얼음 판을 걷는 느낌이다.
'여름 스피드'는 그렇게 내가 잊고 지냈던 과거의 을의 사랑을 기억해내준다.
드는 감정은 양가적이다.
어릴 적 서툴렀던 나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그때의 내 모습에서 이불 킥을 할 만큼 실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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