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책 리뷰

읽고 나니, 할리퀸 로맨스와는 달랐다.

고고와 디디 2019. 11. 2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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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전만 해도 나 역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 폴과 같은 모습으로 사랑을 정의 내렸을 것이다. '탄력없는 살갗'에 괜시리 덜컥하고, '애인 없는 여자로서 보내야 하는 일요일이 무지 싫은', 다른 여자를 동시에 만나고 있다는 남자친구 로제의 솔직함에 대해 '그런 정직성만으로는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없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폴처럼 말이다.

                                                                                                      책표지ⓒ 민음사

 
 
점차 폴에 대해 질려갈 때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새로운 남자 시몽을 등장시킨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시몽의 질문에 폴은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잃어버렸다는 점을 깨닫고, 연인인 로제가 새로운 여자와 관계를 시작한 것에 대한 복수로 자신에게 열정적으로 구애하는 시몽을 이용할까 하는 잔인한 생각도 해본다.
 
가끔 이 소설이 고전이 아니라 할리퀸 로맨스였다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본다. 새로운 남자 시몽은 로제 만큼 매력적이면서도 한 여자에게 충실한 남자여서 폴이 제대로 로제에게 한 방 먹이고 행복한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로 말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고전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은 폴이 새로운 남자 시몽과 연인인 로제를 비교하면서 로제와의 관계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점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남자들은 뻔뻔스러운 데가 있어.' 폴은 별다른 유감없이 생각했다. '날 완전히 믿는다니, 완전히 믿는 나머지 날 속이고 혼자 내버려 두다니, 하지만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아. 참 대단해.  (p.72)

 
그녀는 끝내 시몽을 사랑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허상 같은 로제와의 관계로부터는 자유로워졌을까? 반 이상 읽어 내려가면서 답답하던 나를 위한 사이다 같은 반전이 있었을까?
 
사랑을 하게 되면 으레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조금 더 예뻐보이려고 노력하고 괜히 그에게 집착하는 모습으로 비춰질까 속으로는 썩어 들어가면서도 쿨한 척 행동하는 그런 일련의 행동들이 한순간에 없어지기가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그 이면에는 그가 헤어지자고 하면 혼자 지내게 될 수많은 밤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는 불안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이 아닌 꾸며진 자신으로 언제까지 관계를 유지해갈 수 있을까? 폴이 두려워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것일테다.
 

오늘밤도 혼자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 역시 그녀에게는, 사람이 잔 흔적이 없는 침대 속에서 오랜 병이라도 앓은 것처럼 무기력한 평온 속에서 보내야 하는 외로운 밤들의 긴 연속처럼 여겨졌다. 침대 속에서 그녀는 마치 누군가의 따뜻한 옆구리를 만질 수 있기라도 한 듯이 본능적으로 한쪽 팔을 뻗었고 누군가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는 듯이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남자든 아이든, 누구든 상관없었다. ( p.17)

 
결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외로움이 지배하는 삶에는 내 선택지는 적다. 외로움을 인생의 한 측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한 끝없는 그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조만간 질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